당신의 첫 번째 재즈 음반 12장
들어가며
p.17-18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께
당신은 이 책을 언제, 어디서 읽고 있는가. 퇴근길 전철 혹은 버스에서? 힘든 하루를 보낸 뒤 잠을 청하기 전 잠자리에서? 그렇다면 당신의 하루는 어떠했는가. 그렇다. 모두가 지치고 힘들다. 뼈 빠지게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손에 쥐어진 단 몇 푼에 당신은 지금 한숨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일이 끝난 지금도 스트레스와 걱정이 당신을 괴롭힐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별 할 일 없이 집에서 무력하게 하루를 그냥 보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정신 없이 바쁜 하루였지만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공허감에 당신의 오늘은 여전히 우울할 수도 있겠다.
조금의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단지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 최소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다. 21세기의 첫 10여 년을 거쳐 온 지금, 우리의 삶은 불안, 우울 그리고 피폐로 얼룩져 있다. 어떠면 현재의 희망이란, 냉정한 현실 인식이 아니라 자기만의 환상 속에서나 가능하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음악이란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 앞에 지극히도 무력할 뿐이다. 더욱이 이 책은 당신의 고통에 아무런 위안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은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이 이미 잘 알고 있다. 다시 말해 당신은 이 책에 그리 큰 기대를 갖고 있지 않다. 단지 일상의 허기를, 무미건조함을 아주 조금이나마 채우고 달래고 싶은 마음에, 혹시나 하는 호기심에 이 책을 들춰보고 계실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책은 당신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 아니며, 그러므로 책을 통한 독자인 당신과 필자인 나의 만남도 꼭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아주 우연한 것이다.
p.20-21
재즈를 부담 없는 배경음악으로 듣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적인 현상을 하나 발견한다. 그것은 재즈란 음악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들으면 괜찮은데 정작 정색하고 집중해서 감상하자면 지루하고 심지어 복잡하며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재즈란 음악이 다양한 음악 가운데 주류가 아닌 이상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대중음악이나 외국의 팝음악을 주로 듣는 분들에게 재즈는 첨단의 신선한 유행을 따르고 있지도 않고, 심지어 음악의 대부분이 연주곡이거나 가사가 있다고 해도 알아듣기 힘든 영어로 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또 유럽의 고전음악을 즐겨 듣는 분들에게 재즈의 소리는 거칠고 생경하며 인상적인 선율이나 드라마틱한 구조도 갖고 있지 않은 기이한 음악으로 들리기 쉽다. 많은 분들이 재즈를 보다 살갑게 감상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p.23
솔직히 필자는 재즈가 만인의 음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이 음악을 좋아할 수 있다고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 재즈는 고전음악보다도 감상자의 숫자가 훨씬 적은 음악이며 대중화되기에는 한계가 있는 음악임에 틀림없다. 전체 음악시장 가운데 3% 점유가 될까 말까 하는 이 소수의 음악이 지난 100여 년간 버텨올 수 있었던 힘은 많은 사람들이 이 음악을 즐겨서가 아니라 연주자들이 일단 악기를 손에 쥐게 되면 꼭 구사해보고 싶은, 도달하고 싶은 연주의 기법을 이 음악을 통해 발견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재즈란 본질적으로 음악인에 의한 음악인을 위한 음악이다. 그럼에도 나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뮤지션의 이 자기만족적 음악을 즐기는 소수의 팬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재즈는 다른 음악에는 없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맛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p.25-26
음악을 조금 더 좋아하시는 분들은 음악을 통한 아무런 상상 없이 소리 그 자체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선율이나 화성이 별 이야기를 전개하기도 전에 그저 피아노 소리 울림 그 자체만으로도 쾌감에 깊이 빠져드는 것이다. 음악으로부터 감동을 느끼는 두 번째 심리적 부류를 음악에 대한 이해, 분석이라고 하지 않고 감각적인 반응이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음악을 분석, 이해하여 호불호를 판단하는 사람들은 음악 애호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인 전문가에 불과하다. 음악을 깊이 좋아하시는 분들 중 다수는 악기 소리 그 자체에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분들이 대부분이다. 이 책이 희망하는 것은 음악을 통해 자유로운 상상을 즐기셨던 분들이 그 상상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악기와 그 조합이 주는 소리의 맛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길로 안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리의 맛을 통해 재즈의 맛을 즐기는 것이며 그것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다른 음악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한 향미를 지니고 있다.
p.29
이 책을 통해 우연히 만난 당신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궁핍한 시대이지만 그대로 비용과 시간을 쪼개 음악을 듣고 마음의 위안을 얻으며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존엄을 최소한이나마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일면 일식도 없지만 우리는 서로를 마음속으로, 조심스럽게, 친구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01 CHET BAKER - CHET BAKER SINGS
p.37-38
재즈연주의 일반적인 형식인 '주제-즉흥연주'주제'의 모습을 이 음반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일반적인 대중음악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곡의 주제를 가수가 부르고 가운데 약간의 간주가 삽입된 뒤 다시 주제가 반복되면서 곡이 마무리되는 것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형태다. 그런데 쳇 베이커의 <오래 전 느낌>을 보면 대중음악에서 간주에 해당하는 즉흥연주 부분이 1분 25초로 전체 곡 길이에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재즈의 핵심적인 특징이 있다. 보통 팝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곡의 주선율과 전체적인 사운드를 듣게 된다. 물론 재즈에서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재즈가 다른 음악에 비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다른 음악들이 간주로 여기는 곡 중간의 즉흥연주 부분이다. 여기서 연주자들은 자신의 연주지교, 곡에 대한 해석, 음악에 대한 심미안 모두를 표출해 낸다. 그리고 감상자들은 그 부분에서 연주자 각각의 개성을 펄펄 살아 숨 쉬는 언어로 만끽하게 된다.
보통 재즈를 즉흥의 음악, 자유의 음악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곡의 주제도 중요하지만 이후에 등장하는 즉흥연주 부분을 감상의 포인트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재즈다.
p.42-43
음악인이라는 전문가들은 '규칙'으로부터 지배받고 있으며 '방식'이라는 확실성 속에서 그들의 안전함을 찾으려는 사람들이다. 전문가의 입장에서는 그의 노래가 너무도 미숙한 아마추어 수준이었겠지만, 그들이 간과했던 것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의 감수성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소위 비트세대라고 불렸던 당시의 젊은이들은 '꿈은 이루어진다', '소년은 소녀와 만났다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 결국 행복하게 살았다'와 같은 전통적인 미국식 해피엔딩 스토리를 이제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 세대였다. 그들의 전 세대들이 풍성한 중저음과 완벽한 호흡으로 악절을 구사할 줄 하는 프랭크 시나트라에 매료되었다면, 비트세대들은 이제 시나트라의 목소리를 버거워하고 심지어 촌스럽게 느끼던 세대였다.
......중성적이고 가녀린 목소리, 좁은 음역, 서툰 발음 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불안하고 수줍은 듯이 흘러나오는 그의 음성은 프레슬리와 또 다른 당시 젊은이들의 자화상이었다. 그의 음성은 새로운 청춘의 음악이었다.
02 BILLIE HOLIDAY - LADY IN SATIN
p.51
[새틴을 입은 레이디]에서도 빌리의 노래는 곡의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주제를 제시할 때 그녀는 매우 독창적이며 즉흥적인 방식으로 노래를 부른다. 박자를 한껏 늦춰서 가사를 붙이는가 하면 주제 선율이 갑작스럽게 변형된다. 이러한 창법은 빌리 할러데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 이후에도 몇몇의 재즈가수들에 의해 재현되었을 뿐이다. 대부분의 재즈가수들은 주제 이후 솔로가 전개되는 순서에서 기악연주자들처럼 즉흥적인 선율에 무의미한 음절(예를 들어 '두와-두밥'과 같은)을 붙여 부르는 소위 스캣 창법으로 그들의 즉흥성을 표현한다. 하지만 빌리는 스캣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이롭게도 그녀가 부르는 선율은 변칙적이고 박자는 신축적이다. 그것은 도무지 모방 불가능한 스타일이다. 여기 좋은 보기 하나가 있다. [챗 베이커 노래하다]와 [새틴을 입은 레이디]에 공통으로 실린 호기 카마이클의 곡 <당신 없이도 잘 지냈죠>를 비교해서 들어보라. 이 발라드 넘버에서조차 빌리의 선율과 박자가 얼마나 분방한가를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므로 [새틴을 입은 레이디]는 너무나도 재즈적인, 지독한 재즈앨범이다.
p.57
우리는 찢어진 성대의 결 사이로 깊숙이 박혀 있는 그녀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한 채 그대로 응시하게 된다. 그녀의 호흡을 너무 짧게 끊어버리는 병든 폐부의 고단함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기이하게도 추함의 극한에서 아름다움의 끝으로 비상한다. 에드바르트 뭉크 혹은 에곤 실레의 그림처럼 병마와 고통의 잔혹한 경로를 통해 미에 다다른다. 그것이 [새틴을 입은 레이디]다.
이 음반에서 빌리의 선곡기준은 노랫말이었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그녀는 이 노래들을 자기의 이야기인 것처럼 노래했다. 마치 글을 읽듯 읊조리는 가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평범한 노래들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무게의 진정성을 싣고 있었다.
03 BILL EVANS - YOU MUST BELIEVE IN SPRING
p.67-68
재즈의 역사를 근원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두 가지 줄기가 나온다. 하나는 야외에서 행진하며 연주하는 고적대(marching band)의 전통이며 또 다른 하나는 사교 모임 혹은 술집 등과 같은 유흥 장소에서 연주되던 살롱음악의 전통이다. 피아노는 말할 나위 없이 실내음악, 살롱음악의 대표적인 악기였다. 반면에 드럼은 유럽의 전통에서 보면 실내에서는 거의 연주되지 않던 야외 고적대를 위한 타악기인데 원래는 여러 명이 연주하던 것이 실내용 악기로 정착되면서 한 사람이 연주할 수 있도록 조립된 형태다. 여기에는 스네어, 탐탐, 베이스 드럼과 같은 북 종류와 하이-햇, 라이드, 크래시 심벌과 같은 금속성 심벌즈 종류가 포함되어 있어서 리듬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색을 더해준다.
......피아노가 살롱음악의 전통에서 왔고 드럼이 고적대의 전통에서 재즈로 흘러 들어온 악기라면 베이스는 이 모두를 흡수한 재즈의 혼합적 성격을 담고 있다. 고적대에서 저음은 이동이 불편한 현악기가 아니라 저음 금관악기인 튜바가 맡았다.......1920년대 말부터 재즈는 튜바 대신에 저음을 보다 부드럽게 연주할 수 있는 네 줄짜리 현악기인 베이스를 조금씩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베이스의 역할은 주로 활로 연주되면서 저음부를 맡는 것이지만 재즈에서의 베이스는 주로 손으로 현을 퉁기는 소위 피치카토 주법으로 저음뿐만이 아니라 리듬악기의 기능을 담당한다. 그것은 재즈가 그만큼 리듬을 중시한다는 의미도 되겠는데, 그것은 어느 정도 행진음악의 전통과도 관련이 있다. 재즈에서 베이스가 피치카토로 4/4박자를 연주하는 것을 보통 워킹 베이스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행진음악에서 저음을 담당하던 튜바의 성격과 정확히 일치하는 표현이다.
p.73
재즈 피아노 트리오는 피아노가 선율과 화성을 제시하고 베이스와 드럼이 저음과 리듬을 공급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식이다. 하지만 그러한 규칙에서 보다 자유롭게 세 사람 사이의 자유분방한 대화, 즉흥적인 영감의 교류를 중시했던 것이 에번스 트리오였으며 그 점이 빌 에번스가 재즈 피아노 트리오에 남겨 놓은 가장 선명한 족적이었다.
그런데, 음악적으로 보자면 그러한 연주방식은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복잡하게 들리기 쉽다. 하나의 선율이 선명하게 전달되고 리듬이 명확하게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와 베이스가 뒤엉킨 선율을 만들어 내고 드럼이 리듬을 추상적으로 제시할 때 감상자는 보다 면밀히 그들의 교감에 동참해야만 즉흥적으로 진행되는 음악적인 대화를 이해할 수 있다.
......에번스는 그러한 음악적 형식의 완성에는 인간의 심성이 반드시 담겨야 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아울러 담고자 하는 그의 심성은 많은 사람들의 취향과 쉽게 소통하는 것이었다. 다분히 진보적인 에번스 트리오의 표현 형식 속에서도 사람들이 그들의 연주를 들으며 때로는 눈물짓게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음반을 녹음하던 당시 에번스 자신은 자신의 심정을 은밀하게 표현했다고 여겼겠지만 오늘의 시각에서 보자면 [당신은 봄을 믿어야 해요]는 분명히 어두운 죄의식의 참회록이자 연민의 기도문이다. 당시 연주자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비로소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 그였지만, 그의 영혼의 이면은 '73년 결혼과 더불어 헤어지게 된 옛 여인 엘레인의 자살, 그리고 그의 정신적 버팀목이었던 형 해리의 깊어가는 우울증을 곁에서 지켜보는 깊은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04 PAUL CHAMBERS - BASS ON TOP
p.84-85
일반적인 감상자들의 귀에는 베이스가 잘 들리지 않을 수 있어도 모든 연주자들이 특히 귀 기울이고 있는 악기는 베이스다. 특히 재즈에서 베이스는 근음을 연주함으로써 다른 악기들의 화성적인 첨가, 진행 방향을 제시해 주며 피치카토로 리듬의 골격을 잡아주고 있기 때문에 재즈 특유의 스윙 리듬을 만들어 내느데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한마디로 재즈에서 베이스는 방향타 역할을 한다.
p.89
'관악기와 같은 horn-like'이라는 표현은 일종의 재즈의 관용구로, 화성, 리듬만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관악기처럼 단선율로 전면에서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재즈 베이스의 이러한 역할은 지미 블랜턴에 의해 획득된 것이다.
p.90
자신의 밴드도 없는 스물두 살 짜리 애송이가 이런 걸작을 만들다니! 특히 재즈계의 일급 연주자로 꼽히던 피아니스트 행크 존스(당시 39세) 앞에서도 그는 전혀 주눅 들지 않고, 거침없이 당돌하게 활을 놀려댄다. 이 '활시위'는 이전 세대의 슬램 스튜어트를 제외한다면 재즈에서 흔히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특히 20대의 나이로 최고의 밴드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에서 활약하던 테임버스의 패기는 이 주법으로 이제 내가 정상에 올라섰다는 선언문을 당당하게 낭독하고 있다. <지난날들>의 전주에서부터 이후 세 번의 코러스를 오로지 활로 밀어붙이는 대목은 기교에 대한 확신 없이는 구사할 수 없는 20대의 의기양야함, 그 자체다.
05 KENNY DORHAM - QUIET KENNY
p.99
트럼펫은 관악기다. 이 관악기의 용도는 합창단에서 보자면 소프라노 음성, 현악기 앙상블에서 보자면 바이올린과 같은 존재다. 한 마디로 가장 높은 음역을 연주하는 관악기다.
p.104
디지 길레스피는 찰리 파커와 함께 '40년대 중반 비밥이라는 모던재즈를 선두에서 이끌었던 인물로 이 음악의 업버에 맞게 화려하고 빠른 연주를 구사한 트럼펫 주자다. 그의 음폭은 매우 넓으며 특히 고음역에서의 화려한 연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반면에 마일스는 그와 정반대다. 그의 음색은 - 물론 그는 뮤트를 사용할 때 날카로운 맛을 주지만 - 여리고 온화하며 빠른 악절이나 높은 음역대의 연주를 거의 구사하지 않는다. 반면에 음과 음 사이의 여백을 중시하고 음이 등장하는 타이밍이 매우 절묘하다. 앞에서 들었던 쳇 베이커의 연주 역시 마일스 데이비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확실히 도럼은 마일스에 가깝다.
p.105
재즈의 '고유한 맛'이다. 이것이야 말로 재즈라는 넓은 외연의 음악에서 핵심을 향해 파고 들어갔을 때 만나게 되는 블루스란 이름의 정수다. 물론 블루스란 말은 굉장히 넓은 의미에서, 때로는 왜곡되어 사용된다. 하지만 <우울한 금요일>과 <블루 스프링 셔플>에서 블루스는 네 마디의 3행시, 즉 12마디 블루스의 형식을 전형적으로 따르고 있는 곡들이다.
블루스는 형식이며 동시에 느낌이고 정신이다. 그것은 20세기 아프리카계 미국 음악 전반에 하나의 젖줄이 되어 그 토양을 비옥하게 했으며 그중 재즈는 블루스를 통해 가장 많은 탐스런 과실을 맺은 옥토다. 이 블루스 형식의 곡을 들을 때 당신은 재즈의 한가운데서 짙푸른 색으로 빛나는 영롱한 결정체를 보게 된다. 그리고 도럼의 트럼펫은 그 빛깔을 너무도 절묘하고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06 J.J. JOHNSON & KAI WINDING - THE GREAT KAI & J.J.
p.117
트롬본은 트럼펫과 그 용도가 다르다. 트럼펫이 높은 음역에서 주선율을 이끌면서 현악기 중 바이올린과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면 트롬본은 중저음으로 주선율에 화음을 넣어주는데 현악기에 비유하자면 첼로와 유사한 음역을 담당한다.
p.118
두 대 이상의 관악기 편성은 트롬본의 특성을 잘 대변해준다. 그러니까 앙상블에서 늘 조역을 맡아온 이 악기는 혼자 있을 때보다 함께 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나는 것이다.
p.119
이 음반에서 트롬본의 매력은 물론 재즈의 특성상 연주 중간에 위치한 즉흥연주에서 맛조게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연주하는 주제 부분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중저음 악기들의 앙상블에서만 맛볼 수 있는 풍성한 울림이다. 고음역의 악기들로는 이러한 앙상블의 매력을 결코 만들 수 없다.
p.120
금관악기도 경우에 따라서는 작은 소리의 앙상블을 연주해야 할 때가 있다. 이때 음량을 줄이고 음질에 변화를 줘야 할 때 사용되는 것이 뮤트다. 뮤트는 금관악기가 소리를 내보내는 벨 부분에 부착하여 기본적으로 보통 때와는 달리 분출되는 소리를 일부 막으면서 동시에 음질에 변화를 준다.
07 HANK MOBLEY - SOUL STATION
p.137
색소폰은 목관악기다. 몸체가 금속으로 되어 있어서 오해받기 쉽지만 이 악기는 목관악기인 클라리넷의 사촌이다. 다시 말해 입술을 직접 떨어 여기에 마우스피스를 대고 소리를 내는 금관악기와 달리, 마우스피스에 얇은 나무 조각(reed)이 부착되어 있고 이를 입에 물고 불어 나무 조각의 진동을 통해 소리를 내는 목관악기의 특성을 색소폰도 그대로 갖고 있다. 그러므로 색소폰의 소리는 클라리넷의 소리가 그렇듯이 트럼펫, 트롬본과는 전혀 다르다.
p.144
케니 도럼의 트럼펫이 그렇듯이 행크 모블리의 테너 사운드는 중도의 맛이 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조금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맛이다......그에게 중요한 것은 스타일이 아니라 정석의 접근이다. 그러므로 그는 급격한 클라이맥스나 과장된 루바토를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 즉흥연주의 어느 지점에서도 그는 담담하며 흐트러짐이 없다. 그런데 그 맛은 씹을수록 감칠맛이 도는 잘 지은 햅쌀밥처럼 한 곡, 한 곡 진행되면서 그 맛이 우러난다. 도럼의 진미가 <우울한 금요일>과 <블루 스프링 셔플>에서 느껴지듯이 <디스 디스>와 <소울 스테이션>은 블루스 혹은 블루스적인 느낌의 단순한 주제를 기반으로 서서히 달구어져 절정을 향해 올라가는 견고한 그의 즉흥연주를 펼쳐 보인다
.......동시에 그것은 재즈 연주자라면 응당 지녀야 할 자아의식을 뒷전으로 밀어놓고 자신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재즈와 블루스, 하드 밥 그리고 테너 색소폰이라는 악기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설파하는 전령사와도 같은 모습이다. 이것은 재즈에 대한 헌정이다. 연주자들 사이의 살벌한 연주경쟁(그것은 '배틀' 혹은 '커팅 콘테스트'라고 부른다)이 수시로 벌어지는 재즈계에서 이러한 태도를 지닌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심지어 조금은 무모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블리는 음악에 대한 확고한 태도를 견지했고 그 진가를 아트 블레이키, 맥스 로치 등 일급의 밴드리더들은 간파하고 있었다.
08 DAVE BRUBECK QUARTET - TIME OUT
p.153
거칠게 구분하자면 재즈는 낮과 밤 중 밤의 음악이다. 모든 음악이 노동을 하는 아침과 낮에 연주되기보다는 여가시간인 밤에 연주되는 경우가 훨씬 많지만 그럼에도 재즈는 그중에서도 특히 밤의 음악이다. 당연하지만 여기에는 근거가 있다. 20세기 도시의 체계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꿔 놓으면서 밤의 활동시간을 모든 사람들에게 확대시켰는데 그속에서 탄생하고 성장한 것 중의 하나가 재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재즈란 음악은 공간적으로는 도시며, 시간적으로는 밤의 산물이다.
p.156
데이비드 브루벡 쿼텟처럼 관악기 한 대에 피아노 트리오로 이루어진 재즈 밴드에서 이처럼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은데 그것은 재즈라는 밤의 음악을 통해 만들어진 관악기들의 특별한 음색 때문이다. 이 점은 앞서 들었던 행크 모블리의 음색이 아침 분위기와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것을 봐도 금세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들은 데이브 브루벡 쿼텟은 보통의 재즈 밴드와는 다르다. 물론 그 이유는 여기에 참여한 네 명의 연주자 모두에게서 찾을 수 있겠지만 그 누구보다도 알토 색소폰 연주자 폴 데스먼드의 음색이 결정적인 역할은 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p. 162
이 음반의 대성공은 앞선 [쳇 베이커 노래하다]와 마찬가지로 '50년대 서해안 지역에서 불어온 온화하고 세련된 쿨 사운드의 성과였다. 캘리포니아 주 콩코드 출신의 브루벡과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데스먼드가 빚어낸 윤기 있는 사운드는 지하의 음습한 느낌을 거둬내고 햇볕 좋은 날, 한가로운 산책의 쾌적함을 재즈에게 부여했으며 사람들은 집안 거실에서, 커피숍에서, 미술관에서 마치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실내악을 듣듯이 데이브 브루벡을 감상하게 된 것이다. 5/4박자이든, 9/8박자이든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베니 굿맨이 미국 국민들을 재즈에 맞춰 춤추게 했다면 브루벡은 그들로 하여금 재즈를 경청하도록 만든 것이다.
09 MILES DAVIS - ROUND ABOUT MIDNIGHT
p.169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의 솔로, 즉 즉흥연주를 하고 있는 악기가 어떤 악기인지를 정확히 인식해야만 당신은 재즈에 한 발 깊이 들어설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그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연주자의 개성을 느낄 때 비로소 당신은 재즈의 핵심에 다다르게 된다.
재즈 감상에서 각 연주자들의 개성은 묘미의 핵심이다. 하나의 곡을 놓고 두 명 이상의 연주자가 서로 다른 즉흥연주를 제시할 때 그들의 차이 , 경쟁, 조화는 재즈 특유의 혼란스런 뒤엉킴, 팽팽한 긴장 그리고 화해의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p.177
마일스 데이비스는 그보다 훨씬 차분하고 내성적인 즉흥연주를 구사한다. 그는 가급적이면 높은 음역의 연주를 피하고 음을 경제적으로 상ㅇ하면서 악절과 악절 사이의 여백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자신의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프럼펫 사운드를 보다 건조하고 날카롭게 만드는 하몬 뮤트를 그는 즐겨 사용했는데 이 앨범 중에서 <자정 무렵이면>, <당신의 모든 것>, <바이바이 블랙버드>, <그리운 스톡홀름>, <부도>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하몬 뮤트 사운드의 표본이다. 마일스 이전에 하몬 뮤트 사운드의 가능성을 이토록 예리하게 간파해 낸 인물은 없었다. 그러므로 재즈팬들은 그의 연주 단 몇 마디만으로도 그의 것임을 단번에 알아챈다.
p.179
평론가 휘트니 발리에트는 야성적인 콜트레인의 색소폰과 차갑게 빛나는 마일스 트럼펫의 조화를 "거칠게 깎은 마운팅 위에 빛나는 정교한 보석"이라고 표현했다. 넘실거리는 스윙 위로 간결하고 인상적인 마일스의 트럼펫이 주제를 제시하면 그 뒤로 콜트레인이 폭포수 같은 즉흥연주를 쏟아 낼 때 음악은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는다(마일스가 주도할 때와 콜트레인이 솔로를 전개할 때 리듬 섹션 사운드, 특히 '필리' 조의 변화에 주목하라). 하지만 콜트레인의 거침없는 연주는 앞서 마일스가 제시했던 주제를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마일스의 간결한 표현양식을 보다 높은 위치로 올려놓는다. 어쩌면 마일스가 속했던 찰리 파커 퀸텟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이는 트럼펫과 색소폰의 극적인 대조는 마일스가 색소폰 주자들에게 늘 요구하는 것이었고 그것이 콜트레인이라는 위대한 색소폰 주자가 발탁된 이유이자, 역시 탁월한 주자였음에도 그곳에서 적응하지 못했던 행크 모블리의 비운의 원인이기도 했다.
10 SONNY CLARK - COOL STRUTTIN
p.187
이 음반을 듣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테너 색소폰을 사용했던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의 편성과는 달리 이 음반에서는 알토 색소폰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미 당신은 테너 색소폰(행크 모블리, 존 콜트레인)과 알토 색소폰(폴 데스먼드)을 비교해서 들어봤다. 하지만 여기서 당신은 트럼펫-알토 색소폰이 함께 빚어내는 보다 강한 산성의 앙상블을 처음으로 맛볼 것이다. 아울러 앞에서 들었던 폴 데스먼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알토 색소폰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둘째,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과 동일한 체임버스-존스의 반주 위에서 다른 악기 주자들(특히 밴드 리더)이 바뀌었을 때 이 베이시스트와 드러머는 어떻게 변화하며 또 어떻게 그들의 개성을 일관되게 유지하는가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당신은 다섯 명의 연주자 각각의 개성을 음미하게 될 것이다.
p.195
만약 한 개의 음을 치는 방식, 당신이 갖고 있는 소리 그리고 악절에서 그 누구도 아닌 당신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다면 당신은 연주에 있어서 영혼을 갖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재즈란 자기표현인 것이죠.
11 Jonh Coltrain - Blue Train
p.203
트럼펫-트롬본-색소폰, 여기에 리듬 섹션이 더해진 6중주 편성은 소규모 밴드가 가장 확장된 편성이다. 물론 6중주보다 더 큰 7-9인조의 소규모 배늗도 있지만 재즈에서 가장 큰 편성이라고 할 수 있는 빅밴드의 기본요소를 최소 단위로 축약해 놓고 있는 것이 이 6중주 형태다. 그러므로 이 6중주는 이보다 작은 편성에서는 시도할 수 없는 연주 방식을 구사한다. 한 명의 관악기 주자가 솔로를 전개하고 있을 때 나머지 두 관악기 주자가 그냥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솔로 주자의 뒤에서 반주를 넣어주는 방식이다. 이때 반주를 맡는 두 관악기는 보통 짧고 단순한 악절을 반복하는데 이러한 악절은 리프라고 부르며 이는 빅밴드에서는 빈번하게 쓰이는 편곡방식이다.
p.214
이 음반이 콜트레인의 음반이란 사실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는 이 음반에서 그 누구보다도 많은 솔로를 들려주는데 그럼에도 그 공간에는 아무런 빈틈이 없다. 날카로우면서도 밀도 높은 음색과 고음으로 올라갈 때 순간순간 갈라지는 허스키한 소리는 색소폰의 매력 그 자체다. 그의 즉흥 선율은 꽉 짜인 구성미, 탄탄한 논리를 갖추고 있지만 그럼에도 다른 연주자들에게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으로의 도약이 과감하게 벌어진다. 예를 들어 이런 대목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음반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로코모션>의 주제는 코러스가 진행될 때마다 마지막 행(이 곡 역시 <블루 트레인>과 함께 블루스, 즉 4마디의 3행시다)을 콜트레인의 즉흥연주로 대신하는데 끝판에 네 마디의 즉흥연주에 이어서 다음 코러스 전체를 무지막지한 속도의 즉흥연주로 내달리며 폭주하는 대목은 모든 경쟁을 일거에 종결짓고 말았다.
다시 말하지만 재즈 감상의 핵심에는 즉흥연주가 있다. 그러므로 음악속에서 어느 부분이 즉흥연주인가를 느껴야 하고 그 즉흥연주가 어떤 악기인지를 알아야만 그 연주자의 내면과 만날 수 있다.
12 JOHNNY HODGES - WITH BILLY STRAYHORN & THE ORCHESTRA
p.224
빅밴드는 기본적으로 앞서 들었던 [블루 트레인]의 3관 편성인 트럼펫, 트롬본, 색소폰을 확대시킨 것이다. 세 대의 관악기와 피아노 트리오 리듬 섹션으로 구성되었던 6중주는 이 음반에서 네 대 혹은 다섯 대의 트럼펫, 세 대의 트롬본(여기에는 베이스 트롬본이 포함된다), 다섯 대의 색소폰(색소폰 주자들은 클라리넷을 부수적으로 연주한다) 그리고 트리오 리듬 섹션으로 늘어났다. 물론 각 파트의 인원수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빅밴드의 성격에 따라 파트별 연주자들 인원은 차이가 있으며 심지어 새로운 파트가 추가되는 경우도 있다.
......아울러 빅밴드의 좌석배치 역시 고정불면은 아니지만 교향악단의 배치처럼 일정한 형식이 있다.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봤을 때 왼편에는 리듬 섹션이 위치한다. 반면에 오른편에는 관악기 섹션이 위치하는데 계단식 무대에 연주자들이 파트 별로 나뉘어 앉아 있다. 맨 앞줄은 색소폰 주자들 그 다음이 트롬본 주자들, 맨 뒷줄이 트럼펫 주자들이다.
p.233
[빌리 스트레이혼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함께]처럼 엘링턴의 섬세한 감성을 스트레이혼이 보좌해 주고 호지스가 이 모든 것을 표현해 낼 때, 그 성과와 비교될 수 있는 음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특히 스탠리 댄스가 지적한 대로 발라드 넘버에서 호지스와 스트레이혼이 밎어내는 일체감을 경이로울 정도다. 앞서 재키 매클린과 존 콜트레인의 강하고 빠른 연주를 들었던 당신은 상대적으로 호지스의 연주가 평범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처럼 주제의 윤곽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는 즉흥선율, 악절 끝에 등장하는 섬세한 셈여림과 비브라토 그리고 윤기 있는 음색은 재즈에서 오로지 호지스만이 유일하다. 아울러 이를 마치 자욱한 안개처럼, 멀리서 들리는 오르간처럼 푸근하게 감싸 안는 관악기들의 앙상블은 스트레이혼의 심미안만이 연출할 수 있는 풍경이다. 더군다나 <하늘빛>에서 색소폰 파트에서 슬며시 등장하는 클라리넷과 베이스 클라리넷의 대조적인 색채감은 엘링턴 오케스트라이기에 가능한 비경이다.
맺음말을 대신하며
p.241
우리에게 재즈는 유럽의 음악처럼 고요하고 명징해야 한다. 혹은 지금의 팝 음악처럼 흥겹고 신나며 편안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재즈는 이방인이다. 제아무리 국제적인 페스티벌이 열리고 커피숍에서 24시간 재즈가 흐른다고 해도 재즈의 본성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그것은 표백되고 순치된 무엇이다.
p.242-243
재즈라는 타자를 만난다는 것은, 실은 우리의 음악 취향을,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을 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한계와 편협을 아는 것이다. 재즈는 여전히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 줄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의 취향을 지키기 위해 지금 재즈를 듣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의 새로운 취향을 만들기 위해, 당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재즈를 듣는 것이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여정이다. 지금 당신의 식탁 위에는 지난 100년간 신대륙의 다양한 음악들의 향료를 즉석에서 버무린, 더 나아가 지난 500년간 아프리카와 유럽의 문명이 거대하게 뒤섞이면서 빚어낸 독특한 향미의 음식이 한 접시 놓여 있다. 바로 재즈라는 이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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